책 제목 : 하얼빈
작가 : 김훈
소설의 진가를 알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다'를 단순한 상식에서 간접적 경험으로 이끌어 내주었습니다.
학창 시절 역사를 배울 때 아쉬웠던 점은 사건 위주로 배웠던 점입니다. 역사를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사람'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사건'에 치중되어 있었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 현재의 실수를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사건에 치중된 역사 지식은 머릿속에서 쉽게 흐트러지기 마련이고 교훈도 남아있기 힘듭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의 '심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는 사건의 간결화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함께 내면을 보여주는 내용은 길게 이어지지만 저격 장면과 사형 집행 장면 묘사는 상당히 짧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영화였으면 슬로로 표현했을 장면이 몇 초만에 지나가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현실에서 사건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것을 간결한 묘사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오롯이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전개가 이어지니까 어느 한쪽에 치중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자기 자리에서 충실히 일을 하며 느꼈을 감정, 안중근 의사와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건을 해석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각자의 사고 흐름과 행동이 주로 묘사된 것이 이 '소설'의 큰 특징입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심정에서부터 시작되어 행동이 차곡차곡 쌓여 순간적으로 발생하죠.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은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하얼빈이란 책은 역사적 관점을 사건에서 사람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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