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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12 '재수사'

책 리뷰

by 나현만 2022. 12. 2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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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1, 2 책 실물

"논리와 합리화, 객관성과 주관성 그 중간 어딘가"

책 제목 : 재수사

저자 : 장강명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 경찰이 살인자를 검거하기 위한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각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살인범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 발전되다가 소설 후반부에 나온 '사실-상상복합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을 두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인자 : 현실에 상상을 연결시키려는 사람

나는 살인을 했다. 나를 처참히 무너뜨린 사람을.
살인의 의도는 없었다. 그냥 저지르고 나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는 동안 느꼈던 감정, 쌓여왔던 앙금이 마치 이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살인을 한 이후 가끔 살인 장면이 꿈에 나온다. 꿈에서 깰 때면 언제 검거될까, 검거가 된다면 어떻게 진술을 해야 할까 등 다양한 생각이 든다. 살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관계 개선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관계 유지에 회의감을 느낀다. '굳이 이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 사람과의 접촉이 없으면 스트레스가 없을 텐데..' 관계 유지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의식적으로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한다. 그게 감정소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살인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연쇄살인, 묻지마 살인 등 일방적인 살인을 제외한 모든 살인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난 상호작용의 극단적인 사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호작용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살인은 상호작용이 폭발한 것이다. 즉, 살인은 서로 간에 상호작용이 기저로 깔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하기까지 나타나는 상호작용이 각자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객관적 감정 측정장치가 있으면 살인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살인을 100이라는 측정치로 기준을 두자.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층간소음을 당했던 사람이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60이라면 40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다. 가정 폭력 피해자의 측정치가 100이 나온다면 정당방위로 풀려나는 것이다. 
살인은 단순히 결과가 아니다. 과정이 없는 결과가 없듯 살인에도 과정이 있다. 살인은…


경찰 : 상상에 현실을 연결시키려는 사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배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의 결정체는 살인이다. 피해자를 포함하여 피해자 주변분들 입장에서는 재해를 입은 만큼 삶이 망가지니까 살해라고 표현하기에 더 적합할 수 있겠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왜 사람을 죽였을까? 
살인을 필연적인 것이라며 자신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살인자 자신밖에 모르겠지만...
집 안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피해자는 집에 있던 칼에 찔려 사망했다. 피해자는 칼에 찔리기 전 칼에 찔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을까? 칼에 찔리고 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을까? 집 안의 칼이 범행도구인 것을 보면 계획적인 살인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정확히는 살인 날짜가 범행 당일 날로 정해진 것은 살인 순간에 정해졌을 것이다. 전부터 서로 어떤 사이였는지는 모른다. 피해자의 특성은 피해자의 주변인 조사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 피해자의 특성이 원한을 살만한 특성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특히 살인을 당할 만큼의 특성인지를.
살인범은 아직 검거가 되지 않았다.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죽지 않았다면 아직 우리 주변에서 일반인의 탈을 쓰고 생활을 한다는 소리다. 사람을 죽이고도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까. 이 살인을 시작으로 더 많은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라면 추가 범행이 일어날 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1%의 가능성이라도 막기 위해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살인범을 검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만큼 너도 피해를 받아야 해'라는 처벌의 의미? '살인은 옳지 않은 행동이고 질서를 해치는 일'이어서? 아니면 추가 범행 방지 또는 새롭게 태어날 살인범에게 너도 잡힐 수 있다는 경고?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검거하지 않으면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원통함은 옅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통함은 전염성이 크다. 때로는 불안, 우울로 변이 되어 다른 사람을 전이시키기도 한다.  
범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나와 마주칠지 모른다. 범인은…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불안'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 범인과 경찰이라는 장치는 불안을 얘기하기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잘 나와있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불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안이 만연한 요즘

불안이라는 측면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살인을 한 사람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 불안의 내용, 형태만 다를 뿐 결국 불안해하며 사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살인범은 검거될까 불안하고, 검거된 후 교도소 생활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불안해한다. 평범한 사람은 도태될까 불안하고, 인생의 희망이 없어지는 것을, 나 자신의 의미가 불분명함을 불안해한다. 어쩌면 살인범보다 더 크고 희미한 불안 속에 살 수도 있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길이 있는 것은 알지만 확신이 없다. 내 존재의 의미,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런 고민의 크기가 너무 커 나를 삼킬 것만 같다. 인생이란 벽 앞에 내 힘으로 쌓을 수 있는 것은 주관뿐이다. 주관이 쌓이면 언젠가 내 인생의 벽은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며.. 그저 최선의 주관만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생기고 나서는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흐려졌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주관이지만 다수의 목소리는 객관이 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객관이 하나의 주관이 된 것처럼 보인다. 좋아요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큰 주관이 된다. 어느새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을 인터넷에서의 주관에서 찾고 있다.   

나는 내 주관마저 잃어버릴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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